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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유 교수의 엄마야누나야 방학살자

기사승인 2016.07.20  23: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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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放學)

[세종=한국인터넷기자클럽] 칼럼니스트 김대유 교수= 세종 때 정원 200명으로 운영된 성균관은 양반자제라 하더라도 생원·진사의 자격을 가진 자라야 입학할 수 있고, 정원이 부족할 경우에는 사학생도(四學生徒) 등 기타 지원자를 입학시켰다.

   
▲ 김대유 경기대교수

유생은 문과(文科) 및 생원·진사의 초시(初試)인 한성시(漢城試)와 향시(鄕試)에 합격한 자와 관리 중 입학을 원하는 자로 한정했으니 성균관은 명실공히 조선시대 최고의 인재 양성기관이었다.

충신과 간신이 모두 성균관에서 배출되었고 어제의 동무가 내일의 적으로 맞서는 숙명의 요람이기도 했다. 세조에 저항하여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처형당한 성삼문과 그 반대편에 섰던 신숙주는 성균관에서 동문수학한 친구들이다.

유생들의 공부생활은 고단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암기식 공부와 토론식 수업을 병행하였다. 때로 임금님이 밤늦게 방문하여 유생들과 터놓고 학문을 논하기도 했으니 자연 유생들의 콧대는 높기만 했다.

성균관 유생들은 공부만 한 것이 아니다. 데모도 열심히 했다.

권당(捲堂) 즉 성균관 기숙사 방을 비운다고 하여 유생들이 임금에게 저항 할 때는 손에서 책을 내려놓고 우르르 뛰쳐나가 집단시위를 했다.

때로는 대전 앞에 몰려 가 상소문을 올리고 주야로 농성했다. 주자학을 이념으로 삼은 유생들이니 시위의 내용은 대체로 충의를 지키자는 것이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시대에 역행하여 수구 꼴통보수의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다.

사면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기묘사화(1519) 때는 유생들이 목숨을 걸고 충신 조광조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집단 시위를 했고, 1902년에는 성균관 유생 신채호 등이 이하영 등의 매국음모를 규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동학교도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교주 최제우의 신원운동(伸寃運動)을 펼칠 때는 유생들이 민중을 등지고 동학 탄압을 주장하는 집단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 물가에서는 모두들 어린시절 동심으로 돌아간다(사진=세종인뉴스)

성균관 유생들이 관 내외 문제로 불만이 있을 때 시위를 하느라고 관에서 모두 물러가는 것을 권당(捲堂)이라 했고, 권(捲)은 ‘거두다’는 뜻이니, 오늘날의 방학(放學)과 그 뜻이 비슷하다.

데모하려고 쉬는 것은 아니지만 지루한 일상의 공부를 떠나 잠시 ‘손에서 학문을 놓다’는 뜻이 방학이니 방학(放學)은 아이들에게 천국의 시간이나 다름이 없다.

시위와 방학은 청년들의 오랜 전유물이다. 3.1절 만세 독립운동과 4.19 의거가 청소년들의 집단시위로 이루어졌다.

우스개 얘기이지만 필자가 조치원고등학교(지금의 세종고등학교)에 재학하던 학창시절 우리 학생들은 두발을 바리깡으로 깨끗하게 밀어대는 선생님들에게 대항하여 전교생이 수업을 거부하고 학교 담장을 넘어 미호천 쪽의 제방 길로 말들처럼 뛰어 도망갔었다.

시위는 하루 만에 진압되고 이튿날 우리는 운동장에서 교사들에게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처럼 두들겨 맞았다. 엉덩이가 터지도록 매를 맞으면서도 의연하고 씩씩했던 학생회장 선배가 얼마나 자랑스럽던지 지금도 그 얼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2005년에 고교생들이 서울 광화문에서 두발자유화를 외치며 촛불시위를 하는 장면이 9시 뉴스의 머리기사를 장식하던 것을 생각하면, 조고(조치원고)의 두발자유화 촉구 집단 탈출 시위야말로 촛불시위의 원조가 아닌가 싶다.

내 어릴 때는 방학 때마다 지금의 대청댐에 잠긴 충북 문의면 외가를 찾았다.

금강은 늘 햇빛 속에서 빛났고 물자라와 어른 팔뚝만한 물고기가 언제든 고개를 내밀었으며, 전설속의 물뱀은 저편 강둑 끝까지 헤엄쳐갔다.

종업식이 끝나자마자 내 살던 연기군 서면 청라리를 등지고 외가로 달려가 개학 전날까지 머물렀다. 물살이 급하고 풍경이 아우라진 금강에서 하루종일 감시하는 외할머니를 따돌리고 외사촌들과 물놀이를 하던 추억은 동화 속 이야기만 같다.

그 추억 때문에 필자는 평생 ‘강변살고’ 있다. 강변에 살지는 못하지만 가슴 속에 늘 강변을 들여놓고 사는 기쁨을 누리니, 이것이 바로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다.

   
▲ 모래사장에서 물장난을 하던 어린시절의 꿈이 생각나는 여름방학(사진=세종인뉴스)

자, 방학이다. 학원수업과 과외로 벌써부터 방학을 반납한 아이들도 있겠지만, 그러나 그 속에서도 아이들로 하여금 캠프와 자연, 영화와 연극, 여행과 놀이를 누리도록 그 가슴들에 한가득 모험심을 살게 하자. 엄마야 누나야 방학 살자.

차수현 기자 chaphung@naver.com

<저작권자 © 세종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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