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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유 교수의 첫번째 글 "치유의 인문학"

기사승인 2016.02.09  11: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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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학의 알파와 오메가, 치유의 인문학

치유의 인문학

김대유(경기대, 교육학박사)

인문학의 알파와 오메가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대학에서는 인문학이 고사(枯死)되고 있는데 역설적이게도 학교 밖에서는 인문학이 유행을 타고 있다. 인문학이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는 황금만능의 시대에 TV에서는 날마다 인문학이 범람하고 스타 강사라는 사람들이 팡팡 뜨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대개 인문학은 후마니타스(humanitas:humanity)라고 부르는데 사전적 의미로 정치, 경제, 역사, 학예 등 인간과 인류문화에 관한 정신과학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 서구에서 시작된 인문주의는 19세기 지식인의 시대를 거쳐 오늘날 인문학이란 용어로 정착되었다. 인문학은 인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나는 '인간(Human Being)이란 무엇인가?', ' 인간의 성격(human personality)은 어떠해야 하는가?' 이  물음들에 답해가는 과정이 인문학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과학적으로 인간 혹은 인간문화의 연구 방법에 관심을 갖는 학문 분야라고 잘라 말하기에는 인문학의 정체성(Identity)이 만만치가 않다.

   
▲ 치유의 인문학(글쓴이= 김대유 교수)

오늘날 인문학은 철학과 문학, 역사학, 고고학, 언어학, 종교학, 여성학, 미학, 예술, 음악, 신학 등에 걸쳐 깊은 연구분량을 축적해왔지만 역사적으로 인문학은 오랫동안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을 가리키는 용어로 이해되었다. 말하자면 인문학은 인간의 삶을 기록한 역사와 인간의 생각을 정리한 철학, 인간의 정서를 담은 문학, 이 세 가지로 대변된다고 할 수 있다.

인문학의 바람은 고대 그리이스로부터 불어왔다. 아테네는 그리이스의 심장이었고, 아테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부패한 정치와 사제들에게 맞서서 인간의 철학을 지킨 ‘인류의 교사’였다. 그를 사형법정에 세웠던 아니토스는 오늘날에 비추어 얘기하면 당대의 여당 당수였다.

함께 고발에 앞장섰던 멜레토스는 지금의 우익 변호사에 해당하는 유세가 였으며, 리콘은 가스통 할배같은 사람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소크라테스가 사형을 당했던 BC399년 즈음 아테네는 델로스 동맹의 맹주국가에서 추락하여 스파르타의 속국이 되었고 아테네의 정신은 무너졌다. 섭정왕 아콘을 비롯한 여당은 우는 사자와 같이 패전의 희생양을 찾았다.

당시 아테네의 야당 지도부인 알키비아데스, 크리티아스 등은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이었고 소크라테스는 비유하자면 함석헌 같은 사람이 아니었을까? 야당 탄압의 일환이자 인민재판의 희생자로 소크라테스는 안성맞춤이었다. 소크라테스의 재판은 긴 철학적 논쟁과 정치적 대립으로 점철되었고, 플라톤은 그 모든 재판과정을 낱낱이 저서에 담았다.

플라톤의 4대 저서인 변명, 크리톤, 향연, 파이돈에는 소크라테스의 인생관과 철학적 지식, 정치적 성향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그 과정을 통해 인류의 삶의 본질을 가르는 위대한 철학이 탄생되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인민재판이나 종교재판을 연상케 한다. 당당한 자기변론과 기만적인 표결, 신본주의에 맞선 인본주의의 발현,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선택한 인간적 자존심, 그의 죽음은 정쟁(政爭)의 산물이었지만 그 죽음의 과정은 지순한 철학의 완성이었다. 소크라테스를 철학의 알파로 인정한다면 부당한 정치에 저항하고 독재에 굴하지 않는 민주주의의 고뇌가 철학의 오메가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오늘날 철학은 대학의 철학교수들 머릿 속에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머릿 속의 철학이 부패한 정치와 결합할 때 인류가 겪었던 불행을 떠올리는 일은 어렵지 않다. 베를린 대학의 일부 철학교수들은 나치스에게 아리안족의 우수성과 유태인의 박멸 논리를 제공했다.

그 결과는 인류 최대의 불행으로 꼽히는 홀로고스트를 초래했다. 유신독재의 주문같은 국민교육헌장은 서울대 철학과의 박아무개 교수가 성안했다. 지식인들의 머릿 속에서 철학이 죽고 대중의 심장에서 민주주의의 피가 식어갈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은 정치적 독재와 학살, 탄압과 무지였다. 철학이 인문학의 심장이라면 인문학은 뜨거운 피가 역동하는 생명체이어야 마땅하다. 철학이 살아야 인본주의가 숨쉴 수 있다.

인문학의 텍스트인 문학의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문학은 인류의 정서를 반영하고 있으며, 아름다운 문학작품은 읽는 이의 파토스(pathos)를 자극한다. 문학은 역사와 철학을 검증하고 우주적 상상력을 키운다. 그러므로 문학을 인문학의 사랑이라고 가리킨들 전혀 손색이 없을 것이다.

문학은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한편 작가들의 심장을 쥐어짜서 만든 결과물이기도 하다. 결이 고운 문학작품과 달리 작가들의 삶은 고단했다. 릴케, 바이런, 키이츠, 니체 등 수 많은 문학가들은 남부끄러운 병과 자살, 단명으로 생을 마감했다. 예나 지금이나 지식인의 두뇌를 가졌던 작가들의 삶은 더 험난했다. 대표적인 진보학자 노엄 촘스키의 고단한 삶을 생각해보라.

언론인이자 학자인 리영희의 저항정신을 되새겨보는 일은 차라리 고통스럽다. 지금은 TV 스타로 여유만만해 보이지만 도올 김용옥은 한 때 군사독재를 규탄하며 필생을 다해 얻었던 고려대 교수직을 내려놓고 삭발투쟁을 했다.

19세기 문학의 세기를 마감하며 세계를 뒤흔들었던 에밀졸라의 ‘나는 고발한다’로 시작되는 뒤레푸스 사건은 문학과 문학인의 본질을 눈여겨 보게 하는 대목이다.

프랑스 육군과 내각이 독일군에게 패배한 직후 희생양을 찾아서 유태인 뒤레푸스 대위에게 간첩 누명을 씌우고 인민재판으로 몰고 갔던 당시, 세계 최고의 작가 중 한 명인 에밀졸라는 잡지 오로르에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기고한다. “나는 고발한다”로 시작되는 뒤레푸스 옹호의 글은 금세기에 이르기까지 실천적 문학의 효시가 되는 위대한 문장으로 기억된다.

이 일로 뒤레푸스는 끝내 사면되고 영웅이 되었지만 에밀졸라는 무지한 대중들에게 쫓겨서 영국으로 망명해야 했고, 1902년 연탄가스 중독증으로 사망할 때까지 뒤레푸스의 승리를 보지 못했다. 에밀졸라, 그로 부터 시작된 지식인들의 투쟁은 전 세계로 번졌고, 새로운 문학적 용어들을 낳았다. 에밀졸라와 함께 진실을 위해 투쟁했던 언론인, 교사, 작가, 예술가, 학자들은 “뒤레푸스는 끝까지 간첩이어야 한다”고 주장한 보수세력에 의해 ‘엥텔렉튀엘’이라고 불렸다.

철없는 이상주의자, 선동가라는 뜻이다. 이 용어는 오늘날 지식인을 뜻하는 ‘인텔리’로 해석된다. 졸라와 함께 행동했던, 후에 프랑스 수상이 되었던 클레망소는 졸라를 가리켜 “제왕에게 반기를 들었던 영웅은 수 없이 많지만 그릇된 다수의 대중에게 홀로 맞선 이는 에밀졸라 이외에 찾아보기 힘들다”고 헌사했다. 1998년 1월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에밀졸라의 ‘나는 고발한다’ 발표 100주년을 맞아 드레퓌스와 에밀졸라의 가족에게 공식 사과 서한을 전달했다.

즉 문학사의 단면을 통해 문학이 저항하는 지식인들의 전유물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문학이 인문학의 사랑이라면 문학은 마땅히 사람의 고통과 진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18세기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인문주의가 19세기에 이르러 지식인의 세기를 꽃피운 배경에는 이렇게 종교와 독재, 부당한 권력에 맞섰던 지식인들의 양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것은 과학의 분야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지구는 돈다고 지껄이며 평생 지동설을 전파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종교재판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그는 발제와 저술을 통해 교황청의 천동설을 무력화시켰다. 교황청의 종교재판을 담당하는 성무청에 감금되어 혹독한 재판과정을 겪고 자택에 유배되어 실명하고, 그것을 지켜보던 외동딸 수녀 마리아는 슬픔에 겨워 절명했다. 그래도 그의 신념은 죽을 때까지 꺽이지 않았고 유폐장소인 그의 초라한 집은 그를 만나고자 하는 유럽의 석학들로 붐볐다. 교황청은 1642년 갈릴레오의 임종까지도 종교재판관을 참석시켰고, 1757년까지 지동설을 주장하는 그의 모든 저서는 금서목록에 묶여져 있었다. 교황청은 겨우 1984년에 이르러 갈릴레오를 사면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갈릴레오에 대한 교회의 판결을 무효로 하고 그의 죄(?)를 용서했다.

치유의 인문학

인문학을 얘기하면서 소크라테스의 철학과 에밀졸라의 문학, 갈릴레오의 과학을 탐색했다. 잠시 인문학의 주역인 지식인의 삶을 통해 인문학이란 무엇이고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했다. 따지고 보면 인문학은 시대의 소산물이고 그 시대를 만들어 온 지식인들의 삶 자체다. 21세기는 대중의 세기다.

화려한 테크놀로지와 고도의 과학문명, 양극화를 부채질하는 자본주의가 팽창하는 시기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장 빠르게 국경을 넘어 이동하는 글로벌 다문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교육의 분야도 마찬가지다. 1980년대에 시작되었던 신자유주의 교육에 대한 비판이 2000년대 초기부터 제기되면서 지금 세계 각국은 생명존중과 생활을 중시하는 웰빙(well-being)교육에 관심을 두고 있다. 미국은 1999년 Columbine High School massacre 총기난사 사건 이후 각주마다 학생안전 관령 법령을 제정하기 시작했고, 한국은 2010년 6.2지방선거 이후 교육복지와 학생인권, 보건교육 문제가 이슈로 떠올랐다. 건강과 안전은 세상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가 되었다.

통계청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13년 한해 자살로 사망한 우리나라 사람은 1만 4427명이다. 하루 평균 약 40명이다. 학생 자살은 연간 200명을 웃돈다.

역시 세계 1위이다. 한국의 총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34개 회원국 중 1위이다. 한국은 자그마치 지난 10년 동안 자살률 1위 국가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행복지수도 OECD 조사국 중 41위로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웰빙(well-being)과 웰다잉(Well-Dying)이 절실한 시점이다.

인문학은 시대마다 그 색깔을 달리해왔다. 그리이스 시대의 인문학은 인본주의의 맹아기(萌芽期)였다. 철학은 모든 것이 신의 뜻이라는 당대의 인생관을 탈피하여 인간 스스로 자신의 삶을 직시해야 한다는 논리를 제공했다. 소크라테스가 고대 인문학의 효시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긴 중세의 암흑기를 깨뜨리며 종교개혁을 불러일으킨 마르틴 루터는 교회의 면죄부를 공격하며 대중을 교회의 권력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작업을 진행했다.

라틴어와 헬라어로 된 성경을 영어와 독일어로 번역했고, 번역판 성경은 인문주의를 초래하는 대중적 단초를 제공했다. 16~17세기 종교개혁의 바람을 타고 18세기에 르네상스 시대가 열렸고, 마침내 갈릴레오 갈릴레이 등에 의해 천동설이 무력화되기 시작했다. 과학은 대중에게 호기심을 심어주었다. 과학이 곧 인문학이었다. 과학자들은 화형당하고 유폐당하면서 진실을 밝혔다. 이에 힘입어 19세기는 과학과 문학, 문예의 꽃을 피워냈다.

지식인들은 정권의 횡포와 대중의 무지를 동시에 맞딱뜨리면서 꿋꿋하게 정의를 외쳤다. 에밀졸라는 진실과 정의를 밝히는 횃불이었다. 지식인의 세기는 곧 인문학의 세기였다. 인문학은 위기의 시대를 밝히는 학문이다. 어지러운 살육이 끊이지 않는 춘추전국 시대에 제자백가는 인문학의 절정기를 열었고, 조선은 정조 이후 천주교 탄압의 회오리 속에서도 실학이라는 인문학을 탄생시켰다.

21세기 만큼 건강과 안전이 강조되는 세기는 일찍이 없었다. TV에서 날마다 떠드는 인문학 강의의 핵심 요지는 마음 편하고 밥 잘먹고 잠 잘 자야 한다는 얘기이다. 인간의 돌봄은 사회에서의 간호와 학교에서의 보건교육으로 정리되었다. 복지와 교육에 관한 법령에 그 내용을 담았다. 미래의 인문학은 소수의 지식인이 독점하는 지식담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참여하는 창발적인 담론을 형성하는 것이 관건이다. 많은 지식인, 교사, 학자에 이어 대중의 시민이 인문학의 주역으로 등장해야 한다. 21세기에 웰빙, 웰다잉의 문제는 대중적 인문학의 핵심과제가 될 것이다. 인류에게 닥친 질병의 재앙, 정신건강과 등은 단순히 치료하고 양호하는 선에서 한계를 지우지는 않을 것이다. 인문학적 마인드를 갖는 것 자체가 마음 치유의 시대를 여는 일이 될 것이다.

세종인뉴스 webmaster@sejong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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