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지만 재미있는 김대유 교수 칼럼
[김대유 교수 칼럼]
암에 걸리지 않은 사람은 없다
경기대학교 초빙교수 김대유 박사
경기대 김대유 교수(교육학 박사) |
[세종인뉴스 칼럼니스트 김대유 교수] 코로나 19에 시달리는 풍경이 일상화된 현실이 안타깝다. 이번 글에서는 코로나보다 수만배나 더 공포스런 암 얘기를 하고자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 4명 중 1명이 보통 암에 걸린다. 연령별로는 대략 50대 남성이 30.5%로 전체 연령대에서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 남성의 경우 50세부터 70대 이후까지 포괄하면 전체 연령 가운데 총 75.3%가 암으로 사망한다.
여성은 50대 이후의 암발생률이 60% 정도에 이른다. 남성은 10명 중 7명이 암에 걸린다는 뜻이니 웬만하면 암에 대해 잘 이해하고 평소 마음의 준비를 해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암세포는 정상 세포와 달리 생체 조직의 기능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증식한다. 인체는 하루에 50여 개 정도의 암세포가 생성되고 소멸된다. 인간은 누구나 암에 걸리는 것이다. 이 중 25%의 사람은 암세포가 무한 증식하여 우리가 아는 ‘암에 걸리는 것’이다.
누가 왜 암에 희생되는지 간접적인 원인은 밝혀지고 있지만 진짜 근본적인 원인은 알 수가 없다. 예컨대 흡연은 암을 불러일으키는 가능성을 많이 내포하고 있지만 그 자체가 암덩어리는 아니다.
중금속이나 방사능이 암 발생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하지만 피해를 입은 사람 중에 누구는 암에 걸리고 누구는 걸리지 않는다. 음주가 간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하지만 과음하는 사람 중에 간암에 걸리는 사람이 있고 걸리지 않는 사람이 있다.
감기를 근본적으로 치료하지 못하는 것처럼 암치료에 대해서 현대의학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암에 있어서 자신은 안전하다고 자신있게 말 할 사람은 지구상에 아무도 없는 것이다. 누구든지 내일이나 한달 후 쯤 암에 걸릴 수 있다.
그러나 아마도 성인들에게 죽음보다 무서운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 암에 걸리는 것이라고 답할지 모르겠다. 내게도 묻는다면 그렇게 대답할 것이다.
내가 국립암센터에서 고위과정을 공부할 때 병원의 공간에서 가장 많이 마주치는 사람들은 암환자들이었다. 그리고 암인지 여부를 진단받기 위해 진료실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불안한 표정이다.
이미 건강검진이나 동네 병원에서 암으로 의심되는 흔적을 발견하고 조직검사까지 받고 온 경우가 많아서 십중팔구 예비암환자이기 십상이다.
암센터의 휴게실에서 잠시 잠을 청하던 때 꾸었던 어느날의 꿈장면을 잊을수가 없다.
국립암센터의 뒷동산에서 수백명의 암환우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잔치를 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어깨에서 어깨로 길게 손을 잡듯이 푸른 칡넝쿨이 연결되어 있었다. 함께 노래를하고 춤을 추었지만 말할 수 없이 슬픈감정이 들어서 흐느껴 울다가 잠이 깨었다.
개꿈이었다. 그러나 그 어두운 배경과 그 속에서 생명처럼 푸르게 빛나던 칡넝쿨의 이미지는 오래오래 기억에 남아있다.
현대의학이 발달해서 인간복제의 시대가 곧 열릴것이라고 하지만 의학은 아직 갈 길이 멀다. 감기나 고혈압, 당뇨같은 흔한 질병의 치료법은 물론이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같은 원시질병도 치료법을 개발하지 못했다.
암은 더욱 근본적인 치료법이 없다. 백신도 개발하지 못했다. 미지의 세계다.
그래서 암에 대한 이해와 오해는 더욱 어렵고 처방은 오만가지다. 암을 치료하는 의사들조차 암이 무서워 매년마다 종합검진을 철저히 받는다. 일찍 발견해서 수술하거나 약물치료를 통해 전이를 막고 재발을 방지하는 방법 밖에는 없는데 그것도 조기발견을 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성별주요 암 발병률(세종인뉴스 자료사진) |
내 아버지는 칠십세에 위암이 발생하여 위 절제술을 받았다.
딱 점 하나 크기의 암세포로 의심되는 이상세포가 위 하단에 찍혀있는 사진을 놓고 보호자로서 부분절제를 요청해봤지만 충남대병원의 암센터 주치의는 매뉴얼대로 위의 3분의 2를 절제하는 수술을 선호했다. 이겨먹을 수가 없었고 아버지는 위절제술을 받았다.
그나마 전이가 안되어 아버지는 85세가 넘도록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만약 위를 절제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역사에 가정이 없다지만 위 절제술을 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면 여러가지의 예측이 가능할 것이다.
▶첫째, 그냥 자연치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둘째, 그 상태를 유지한 채 죽을 때까지 하시던 일상을 지속할 수도 있을 것이다.
▶셋째, 병이 악화되어 전이가 되고 많은 고통을 수반하면서 결국은 사망하였을 것이다. 그렇다. 어떻게 예측하든지 상상일뿐이다.
아마 내 짧은 상식으로는 병이 악화되고 통증이 심해지면서 합병증으로 사망할 확률이 지배적이었을 것이라고 본다. 수술을 선택한 것은 잘한 일이었다. 다만 지금까지 남는 아쉬움은 내시경으로 국부만 도려내는 부분 절제술을 선택해도 좋았을 것이라는 미련은 남는다. 그러나 그것도 상상의 산물일 뿐이다.
당시에는(지금도) 위 절제술이 유행했고, 증세에 따라 국부절제술을 시술하는 병원은 서울의 모 대학병원뿐이었는데 그 병원도 지금은 국부절제보다 위 전체나 3분의 2를 절제하는 수술을 선호한다.
수술 후 5년 생존률에 목숨을 걸다시피하는 우리나라 암병원의 관행은 세계 최다의 위절제수술 통계를 전가의 보도처럼 자랑하지만, 환자의 증세에 따른 다양한 수술법의 개발에는 무관심한 편이다.
세계적으로 암진단과 수술이 우수한 한국의 의료진이라고 평가를 받지만 새로운 환자 맞춤형 수술방법의 개발에는 아무래도 소극적이라고 생각된다.
의사들 탓만은 아닐 것이다. 정부의 재정지원이 인색하고 연구비 투자는 열악한 편이며 심평원의 의료수가 책정도 경직되어 있는 편이니 어디에서 무엇부터 개선해야 할지는 산넘어 산이다.
내 주변의 친구나 친지, 지인 중에도 암환자가 있다. 신장과 간, 폐와 담낭 등에 암조직이 발견되어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있어서 지켜보는 나도 많이 괴롭다.
오래 살수록 암에 걸릴 확률도 높아진다. 예컨대 장수를 선물로 받으면서 암도 페키지로 받는다고 표현할 수 있다. 암은 남녀별로 발생 종류가 좀 다른 편이지만 남성들은 2017년 기준으로 볼 때 위암, 폐암, 대장암, 전립선암, 간암 순으로 발병률이 기록되고 있다.
여성에게 잘 발병되는 암은 유방 암, 자궁 암, 갑상선 암이다. 특히 유방암은 건평원에 따르면 그 증가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 참고로 한국은 암검진이 세계에서 가장 발달되어 있는 나라다. 그만큼 암의 조기발견도 빠른 편이다.
오래사는 것은 텔로미어의 DNA 염기서열과 관계가 깊다. 텔로머레이즈는 일반 세포에서는 발현되지 않으며 생식세포나 줄기세포, 암세포에서 활성화된다. 암세포는 텔로머레이즈를 사용한 끊임 없는 세포분열로 다른 세포보다 수명이 길다.
이런 이유로 암세포에 있는 텔로머레이즈를 억제하는 약물을 거꾸로 항암제로 사용하기도 한다. 반대로 암세포가 아닌 줄기세포에 텔로머레이즈를 사용할 경우 노화를 억제할 수 있어 관련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말하자면 암세포는 죽음과 노화를 극복한 셈이다.
얄미운 세포다. 암은 인간뿐 아니라 다른 동물들에게도 비슷한 수치로 발생한다. 암발생률은 인간의 25%, 개의 20%, 흰돌고래의 18%에서 나타나고 바다거북 등에서도 비슷하게 발병한다. 만약 본인이나 가족이 암에 걸린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조언하기 힘든 부분이지만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본다.
▶첫째, 암은 다른 어떤 중증병에 비해 걸릴 확률이 높은 편이라는 것을 확인하자.
특별히 본인이 잘못해서 걸린것이라는 죄책감을 심어주는 것은 금물이다. 평생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살았던 법정스님도 폐암으로 열반했다.
▶둘째, 치료는 의사에게 맡기지만 치료 범위를 정하는 것은 환자와 보호자의 책임이기도 하니까 신중히 상의하되 무엇보다 환자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
▶셋째, 수술범위를 정하거나 방법을 논의할 때도 환자의 의지와 의사가 존중되어야 한다.
더욱 말기암이라면 수술보다 호스피스 치료를 선호할 수도 있다. 가족의 체면이나 원망을 면하기 위해 치료의 범위와 방법을 정하는 것은 안될 일이다.
▶넷째, 병원치료보다는 민간요법을 택하고자 할 때도 의사의 진단과 병 증상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가능하다면 병행할 수도 있지만 최후에는 어느 하나를 택할 때 본인의 선택에 후회가 없는 마음을 갖고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다섯째, 말기암을 앓게 되면 일상생활을 어떤 방식으로 진행해야할지 고민해야 한다.
영국 태생의 미국 신경과 의사이자 작가인 올리버 색스 뉴욕대 교수는 흑색종 암에 걸려 82세로 사망할 때 6개월간 대중매체를 끊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회고록을 썼다.
법정스님은 말기 폐암으로 고생하시면서도 하시던 일살생활을 유지했다. 조용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생을 마감할지 하던 일을 계속하며 일상생활을 보낼지 결정하는 일은 치료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암을 생각하면 코로나19는 덜 무서울까? 모를 일이다. 모두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표정을 읽을 수 없다. 나는 암보다 마스크 쓴 사람들이 더 무섭다.
칼럼니스트 김대유 교수 dae583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