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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대유 교수의 세상만사] 중년의 온도

기사승인 2019.09.26  20:5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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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유 교수의 세상만사〉

중년의 온도

경기대학교 초빙교수 김대유

청춘은 재밌는 지옥이고 중년은 심심한 천국이다. 날마다 흥분이 넘치고 긴장이 감도는 순간을 만끽하지 못하는 청춘은 불우하다. 날마다 그 날이 그 날인 중년은 아무 낙이 없는 천국과 같다. 아무나 청춘의 시간을 맞이하듯이 누구나 중년의 세월을 만난다. 세상 무서울 것이 없는 중딩과 세상 다 살아버린 듯한 중년의 중자는 중(中)이다. 중딩은 사춘기를 앓고 중년은 갱년기를 아파한다. 양자가 함께 살아가는 공간에서 中자의 의미를 생각하는 일은 부질없다.

흔히 지랄총량의 법칙이라고 부르는 가슴앓이는 본디 중딩병이다. 연애질도 못하면서 불타는 사랑을 꿈꾸다가 애꿎은 자위로 끝내는 중딩들, 화려한 미래의 자화상을 그리다가 텀벙 인터넷 게임에 빠져 허우적대는 그들에게, 청춘은 재밌는 지옥으로 다가오는 게 맞지 싶다. 소년시절 마음껏 지랄도 못 떨고 입시공부만하다가 어른이 되어버린 중년들, 삼사십대를 쨍하고 해 뜰 날 기다리며 직장을 섬기고 가족을 부양하다가 반백이 되어버린 중년들, 어리고 젊은 날들의 지랄을 가슴깊이 묻어 둔 중년들에게 다시 또 중딩처럼 가슴뛰는 날들은 있을까?

중딩의 온도는 알겠는데 중년의 온도는 몇도일까? 표준이 없다. 혈압기처럼 잴 수 있는 기계도 없다. 다만 중년의 온도는 제각기 다 자기 이름으로 표시될 뿐이니, 언제든 확인하고 싶으면 가만히 자기의 이름을 불러보라. 그러면 중년의 온도를 잴 수 있다. 릴케나 소월, 아르튀르 랭보, 기형도, 체사레 보르자처럼 청년시절에 천년의 삶을 살다가 요절한 천재들이 있지만, 이순신, 세르반테스, 시몬느 보봐르, 버지니아 울프, 세익스피어 같은 대부분의 천재들은 중년의 삶을 살았다. 재복이, 왕표, 명자같은 내 친구들은 천재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모두 아름다운 중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요즘 노년의 자살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알든 모르든 세상의 돈은 중년들을 따라서 여기까지 왔다. 여성중년들의 이십대 시절에는 도처에 산부인과가 번성했고 병원마다 소아과가 있었다. 삼,사십대를 사는 동안 번화가에 즐비한 병원은 십중팔구 성형외과였다. 높인 코는 주저앉아서 다시 일어설 줄 모르고 보톡스는 10년이상 맞다보니 이제는 약발이 다하여 성형외과들이 폐업했다. 그 의사들이 상당수 항문외과를 개설하여 직장을 옮겼다. 지금 대도시에서 가장 많이 번성하고 있는 개업의원은 항문외과다.

평생 삼겹살에 소주를 마셔 온 중년 남성들의 항문이 수명을 다해서인지 죄다 터지고 찢어졌다. 치열과 치질, 치핵과 치루의 절제 수술이 유행하고 있다. 항문외과 관련 학회는 술꾼들에게 흔한 치루가 수술 외에는 다른 치료방법이 없다고 1년내내 홈피에 반복하여 떠들어댄다. 경미한 상처조차 거의 모두 칼을 대서 고등어 배따듯 항문샘을 훓어서 들어낸다.

죽었던 정형외과도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중년들의 무릎관절이 싹 닳아서 주저앉기 시작했고 한번 장착하면 10년정도 쓸 수 있는 고가의 인공관절 수술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어깨와 무릅의 연골을 발라낸다. 그게 다 돈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성형을 하는 나라, 세계에서 가장 높은 제왕절개율, 선진국 중 최다의 항문샘 들어내기와 연골 발라내기, 그 돈 잔치의 배경에는 평생 온몸을 수술대에 바친 중년의 헌신(獻身)이 있다. 인신제사를 지내다 망한 태양의 제국 아즈택의 희생(犧牲)처럼 우리 중년들은 시대의 제단에 놓인 제물이나 다름없었다.

가정도 문제다. 빈둥지증후군이 오면서 엄마들은 주먹을 쥐었고, 부부는 서로를 원망한다. 자신의 내면은 보려들지 않고 상대방의 외면을 트집 잡는다. 상대방이 조금만 고쳐지면 가정이 평화로울텐데 저 인간이 개과천선을 안한다며 이혼과 졸혼을 예약하는 부부들이 늘고, 퇴직금과 연금은 갈수록 깍여서 중년세대 간의 빈부격차는 갈수록 벌어진다.

모두 직장을 다니고 나란히 자식을 키우고 현기차(현대, 기아)를 몰던 애틋한 동료애는 실종되고, 고령화 시대의 공포가 시나브로 다가온다. 서둘러 중년의 온도를 잴 시간이 온 것이다. 칼융(Carl Jung)은 이러한 중년의 위기를 개별화(Individuation)라고 불렀다. 중년에 오는 생리적, 신체적 변화는 도미노 현상을 불러일으키며 그동안 가져왔던 생의 목표와 우선 순위를 재평가하고 새롭게 설정하고자 하는 본능을 갖게된다. 퇴직을 준비하고 본격적인 중년을 맞이하면서 매미가 껍질을 벗듯이 자신이 가져왔던 집과 차와 자식, 배우자에 대한 기득권을 재평가하게 되고 다시 설계하는 고통스런 시간이 다가온다. 신(新)중년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개별화에 성공할 수 있을까? 다음과 같이 준비해보자.

첫째, 몸이다. 중년이 가져야 할 제2의 직장은 건강이다. 우리는 퇴직 후에 운동이라는 직장을 가장 먼저 가져야 한다. 자기만의 운동법을 개발하여 하루 평균 2시간 정도의 운동에 전념해야 한다. 122세의 나이로 사망한 프랑스 여성 잔 칼망은 평생 흡연을 했지만 규칙적인 운동으로 장수했다.

둘째, 홀로서기다. 119세로 혼자 살고 있는 이탈리아 출신의 엘마 모라노는 장수의 비결로 독립성을 꼽았다. 인간은 본래 외로움을 잘 견디는 존재다. 혼자 태어나고 혼자 죽는다. 죽을 때는 집도 차도 자식도 다 놓고 혼자 간다. 그러나 인간은 가정생활과 사회활동의 영향으로 외로움을 가장 무서워하게 되었다.

외로움을 심하게 타면 병에 걸리고 일찍 죽는다. 가부장제의 한국인은 홀로서기를 특히 못견뎌 한다. 가족관계, 사회 네트워크를 다이어트하고 홀로서기를 연습하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혼족생활에 익숙한 지금의 청소년들은 중년들보다 장수할 가능성이 더 높다. 중년도 즐겁게 혼밥을 먹고 SNS로 상품을 구입하고 온라인으로 은행 일을 해내며 외로울 때는 당당하게 성인영화를 보고, 훌쩍 떠나고 싶으면 에어비엠비와 호텔부킹을 예약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사랑과 이별이다. 여전히 사랑하되 사랑할 수 있는 만큼만 사랑해야 한다. 애욕과 쾌락을 끝까지 즐기려 들면 오히려 고통을 불러온다. 신중년의 삶에서 이별은 사랑보다 중요하다. 배우자와 친구, 부모와 자식 등 인적관계를 재설정해야 한다.

넷째, 웰다잉이다. 주름이 아름다운 노인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할까? 곱게 늙은 이마의 주름과 우물처럼 생각깊은 눈동자를 가진 사람으로 늙어가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황금빛 빛나는 저 무덤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명상과 큐티(Q․T)를 하고, 조용하고 사려깊은 벗들을 사귀는 길을 가야한다. 길 위에서 우리는 길을 만나야 한다.

차수현 기자 chaphu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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