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유교수 칼럼》
청라언덕에 청보리필 때
[세종=한국인터넷기자클럽] 세종인뉴스 칼럼니스트 김대유= 세종시 조치원역에서 710번 버스를 타면 고복저수지를 지나 용암리와 쌍류리를 거쳐 종점인 청라리에 이른다. 청라리는 세종시의 가장 서쪽 끝 변방에 위치하고 있다. 변방이란 용어는 본래 국경이나 타지방의 접점을 이루는 외진 곳을 가리킨다.
▲ 세종시 연서면 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청라리(사진=세종인뉴스) |
자동차와 노선버스가 드물던 시절 청라리는 조치원역에서 가장 외지고 높고 먼 곳이었으며, 동시에 푸르고 아름다운 시골이었다. 이 땅을 넘어서면 공주의 강역이 펼쳐진다.
청라리 위 터인 나발터와 아래 터인 양대에서 발원한 시냇물은 비암사 방향에서 발원하여 쌍류초등학교를 거쳐 흘러온 시냇물과 합쳐져 쌍류(雙流)가 된다. 이 양 끝의 시냇물 가운데 삼각주인 델타 모양의 동네가 쌍류리이며 이곳에 기름진 물 논이 펼쳐지고 초등학교가 세워진 것은 당연지사다.
조치원의 시내 영역을 벗어난 동쪽의 고복리부터 서쪽의 언덕 끝 청라리까지 4개의 동내(리) 아이들은 모두 쌍류초등학교에 진학했다. 내 엄친이 쌍류초를 졸업했고 우리 4형제가 모두 동문이며 4개 동네의 동무들이 동창이다.
우리 모두는 두 개의 시냇물 사이에서 공부하고 뛰어놀았으며 어디든 산재해 있는 들판의 연못을 뒤지며 물고기를 잡았다.
▲ 청라리, 쌍류리, 용암리, 고복리(복골) 아이들이 함께 다니는 쌍류초등학교(사진=세종인뉴스) |
새삼 동네 이름을 들먹이며 추억하는 것은 동네 이름도 운명을 타고난 것이 아닌가 싶어서이다. 청라(靑蘿)리는 이름 그대로 예나 지금이나 파란댕댕이 풀넝쿨처럼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6,70년대만 해도 벼농사와 보리농사가 주를 이루었고 그 마른 곡식을 먹인 소를 팔아 자식들을 도회지 학교에 유학 보냈다. 청라리의 윗터 나발터 사람들은 순하고 억세지 않았다.
반면 아래 터 양대(陽臺) 사람들은 직격탄으로 아침햇살부터 저녁놀까지 받아서 그런지 성질이 예민하고 드센 편이다. 해를 걸러 양대 뒷동산인 왕재의 소나무에 목을 매어 자살하는 남정네들이 나왔다. 화병을 삭히지 못한 탓이다.
▲ 청라리 1구(나발터) 아래동네 양대마을 입구 표지석(사진=세종인뉴스) |
쌍류리는 북쪽의 생촌에서 고복저수지의 상류에 위치한 솔티에 이르기까지 온통 물로 둘러싸여서 그런지 사람들 성질이 한군데로 모이지 않고 단합이 잘 안 되었다.
청라리에서 시작된 물이 쌍류리를 거처 용암리에 이르면 제법 깊고 넓은 시냇물이 되었다.
그 물을 막아서 고복저수지를 만들었다. 용암(龍岩)리는 용이 물속에 엎드려 있는 형국이며 동네 이름조차 저수지가 될 운명을 타고났다. 아마 어느 고대에 용암리는 본래 저수지나 큰 못이었을 것이다.
용암리 사는 동무들은 유난히 드셌다. 싸움도 잘하고 시끄럽고 씩씩했다. 지금도 씩씩대며 금방이라도 주먹을 휘두를 것만 같은 태식이며 희영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역시 동창회의 주역들이다. 고복리 아이들은 가장 먼 곳에서 학교를 다니면서도 제일 일찍 등교했다. 창수며 억수가 지각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고복리 아이들은 유난히 남녀 동무들끼리 결속력이 강하고 다정했다.
▲ 세종시 유일의 시립공원 고복저수지 전경(사진=세종인뉴스) |
고복(高福)리는 복이 높다는 뜻을 가졌지만 슬픈 동네이기도 하다. 4개 리 중에 남자들이 많이 죽은 편이어서 부인들이 슬픈 곳이라는 말이 있다. 아래 터 고복리는 수장이 되었고 위 터 고복리는 저수지가 되어 절반만 수장되었다. 온 동네가 수장되는 화는 면했지만 다급히 피난 가다 보니 복이 높은 언덕으로 몰려가서 겨우 숨을 붙이고 있는 모습이다. 안쓰럽다.
청라리에서 발원한 물이 쌍류리를 거쳐 용암리로 흘러 고복저수지를 이루고 그 물이 조천으로 내려가서 금강의 지류인 미호천과 합쳐지니, 청라리는 곧 세종시의 모천이며 젖줄이다. 4개 동네는 자신의 몸을 내주어 세종시민을 먹이고 있으니, 변방의 희생과 은덕이 크고 깊다. 고복저수지로 가로막혀 더욱 오지가 된 청라리와 쌍류리의 주민들, 온통 물에 잠겨서 실향의 아픔을 겪은 용암리와 고복리의 동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 용암리는 고복저수지 담수와 함께 대부분의 마을이 물속에 잠겼다(사진=세종인뉴스) |
김대유 칼럼니스트 dae583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