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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문신(文身)속의 용이 되어 하늘을 날아보라

기사승인 2017.05.28  11: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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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문신(文身)

청명한 날에 문신속의 용이 되어 하늘을 날아보라

경기대학교 초빙교수 김대유

[세종=한국인터넷기자클럽] 세종인뉴스 칼럼니스트 김대유= 문신(文身)은 사내들에게 힘겨루기의 경계를 나타내는 표식과도 같다. 어느 시간 어느 장소든 방심하고 있는 사이 문득 마주치게 되는 ‘문신사내’들은 ‘비 문신사내’들에게 까닭모를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

문신이 패션이 되고 액세서리가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지만 문신도 못한 내게 문신은 여전히 부조리한 세계의 마뜩찮은 산물이다. 내가 사는 동네 목욕탕은 유난히 문신사내가 많이 출입한다. 가까이 교도소가 있어서 조폭들이 정기적으로 면회를 오고 그 조폭 면회객들이 사우나에 들린다.

   
▲  청명한 날에 문신 속의 용이 되어 하늘을 날아보라

임시주민인 셈이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일주일에 두 번 오전마다 내가 드나드는 사우나에 손님은 늘 서너 명 뿐인데, 그 중 절반이 문신사내들이다. 화요일엔 어김없이 등짝에 용트림을 한 문신사내가 두어 명 나타나고 목요일엔 꼭 가슴팍에 얼룩달룩한 문신사내들이 등장한다.

말하자면 화요일은 뒷문신파가 사우나를 차지하고 목요일엔 앞문신파가 설친다. 그들이 각기의 요일을 어겨서 나타나는 일은 아직 한 번도 없었고, 어쩌다 앞뒤 다 문신을 한 사내가 나타나면 기존의 앞문신파나 뒷문신파 앞에서 기를 피지 못하고 물을 끼얹는 등 마는 등 허둥대다가 곧 나가버린다.

앞도 뒤도 문신이 없는 맨몸의 등신인 나는 그들 문신파가 불편하다. 왜 등신처럼 불편하냐고? 이유는 간단하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숭이로 상대방의 등짝과 가슴에서 금방 튀어나올 것만 같은 맹수들의 눈길이 일단 불편하다.

그 문신 그림속의 눈길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고개를 들면 뭔가 비릿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는 그들의 눈길과 마주치는 것은 더 불편하다. 사람도 몇 명 없는 사우나에서 그 문신 속의 눈길과 문신을 한 사내들의 눈길을 피하는 일은 허망한 노릇이다. 소금 사우나실로 도망가면 어느새 뒤따라와 사지 활짝 벌리고 드러눕는다. 긴 의자에 걸쳐 앉은 내 아랫도리를 그저 올려볼 뿐인데도 그 눈길이 또 불편하다.

문신파들이 겨우 나누는 이야기 몇 마디 중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용어는 형님이다. 형님이라 부르는 부하 놈은 비누나 플래스틱 바가지를 형님에게 건넬 때마다 그냥 주지 않고 꼬박 형님하고 부르면서 건넨다. 여러 번 듣다보면 그 물건들이 형님인 것만 같다.

어릴 때부터 맹견과 수없이 맞닥트렸던 약한 내가 물려죽지 않고 여태까지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맹견과 눈을 정면으로 마주치지 않고 양 눈을 피해 무심히 양미간을 바라보는 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개들은 달려들다가 공격할 의사가 없는 무심한 눈빛을 읽어내고 낮게 으르렁거리며 발걸음을 돌린다.

문신한 조폭들을 다루는 법도 맹견을 다루는 법과 다르지 않다. 불편한 사우나를 나름 즐기며 적응하는 비법이다. 그러다 문득 나도 문신을 할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문신을 하면 나도 목욕탕에서 조폭처럼 당당해질까?

그 마음을 누르게 된 것은 어느 날 우연히 눈에 들어 온 그네들의 물건이다. 남자들만 소지하고 다니는 물건들은 목욕탕에서 평등하다. 문신 여부를 떠나 각자 소지한 물건만큼은 당당하지 않다. 뜨거운 사우나 물에 젖어 고개 숙인 남자들의 물건들은 하나같이 겸손하다. 앞문신파 뒷문신파 비문신파를 떠나 모두 엇비슷하다.

거기에 문신한 놈은 한 놈도 없다. 벌거벗은 인간의 몸은 가엾고 현란한 문신 속의 오그라진 물건들은 더 가엾다. 서로의 가엾은 물건들을 쳐다보는 시선은 맹견의 미간을 바라보는 눈빛처럼 공격적이지 않다. 교도소를 드나드는 조폭들과 죄수들을 감시하는 간수들과 나처럼 하릴없는 건달들이 조우하는 동네 목욕탕은 그래서 평화롭다.

사내들에게 문신은 조직의 지위와 신분을 나타내려는 목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문신 역사는 삼국지 위지동이전의 문신 기록이 최초이다. 장식이나 부적, 신분의 표시로 행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대에 들어서는 자기표현의 한 방법으로 인식되면서 예술이나 패션의 한 장르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피부에 상처를 내지 않는 그림형태의 문신은 휴가지 등에서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애용되고 있다.

지금은 정치의 계절이다. 정치판에는 큰 맹수의 문신을 한 사내들이 날고뛰고 시장통에는 오래 된 조폭들이 맹견의 문신을 하고 거들먹거린다. 자잘한 보통사람들은 보름이면 소멸되는 꽃 문신을 하고 즐거워하리라. 청컨대 문신은 잠깐만 보고 문신 속의 ‘미간’을 바라보라. 청명한 날에 문신 속의 용이 되어 하늘을 날아보라. 떨어질 때 떨어져도 나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김대유 칼럼니스트 dae5837@hanmail.net

<저작권자 © 세종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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