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트렌드 노벨상 2024, 작가 한강
김대유(서영대 외래교수, 교육학박사)
김대유(교육학 박사) |
한강의 강렬한 시적 산문들
왜 하필 한강(1970년생)인가? 일본의 저명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1949년생)와 중국의 현대작가 엔렌커(1958년생)에 비해 연륜도 낮고 작품량도 적은 한강이 2024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광을 안은 이유는 무엇일까? 한강의 소설들에 대해 스웨덴 한림원은 강렬한 심사평을 내놓았다.
“한강은 작품마다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였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을 선보였다”
이어 뉴욕타임스(NYT)는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과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의 저변에는 분단과 전쟁, 군사독재, 민중 학살, 민주주의를 위한 피비린내 나는 투쟁, 노동권 쟁취 등 격동의 현대사가 담겨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한국인의 응원과 후원으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기보다는 오히려 현존하는 한국의 전근대적 관습과 인권탄압, 폭력주의에 저항하는 작가정신의 승리라고 분석한 것이다.
한강의 수상은 몇 가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노벨문학상 제정 이후 123년 만에 최초로 나온 아시아 여성작가의 수상이라는 진기한 기록이다. 또한 작품의 내면에 불의의 역사를 지적하고 분노한 역사적 트라우마를 담았고, 비현실적이고 초현실적인 실험주의 소설기법으로 인간존엄에 중심을 둔 페미니즘의 새로운 시선을 전개했다.
한강의 대표작에 해당하는 작품들은 그 성격이 매우 다채롭다. 2016년 부커상을 받은 「채식주의자」(2007)는 주인공 영혜를 필두로 언니와 형부가 서로 얽히며 영혜의 육식거부를 둘러 싼 사건들이 불거지는 내용이다.
인터내셔널 부커상, 산클레멘테 문학상 수상작 전세계가 주목한 한강의 역작을 다시 만나다 2016년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하며 한국문학의 입지를 한단계 확장시킨 한강의 장편소설 『채식주의자』 |
그림 문신으로 드러낸 감정의 기복, 불륜의 욕망이 빚어낸 억압과 슬픔, 가족들에 의해 폐기 처분되는 채식주의와 비폭력주의가 슬픈 빛깔로 채색되어 독자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기존의 한국 소설들과 분명히 다른 ‘인간존엄의 트렌드’를 선 보였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2014)에서 온통 마음을 동요시킨 문장들, “누가 나를 죽였는가. 누가 누나를 죽였는가”, “당신이 죽은 뒤 장례를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라는 탄식은 인간의 연약함을 시적으로 표현한 울림이었다.
제주 ‘4.3 민중학살’을 세 여인의 시선으로 바라 본 「작별하지 않는다」(2021, 메디치상)에는 비극의 울렁거림을 주인공 경하가 꾼 꿈을 통해 재현해 내고 있다. 수천 그루의 통나무가 묘비처럼 심겨진 그로테스크한 풍경, 눈 내리는 벌판의 아득함, 묘지 위로 차오르는 물결 속에서 뼈들이 쓸려나갈까 염려하다가 미처 담지 못하고 깨는 꿈에는 ‘통곡’이 담겨있다.
한강의 작품에는 등장인물의 생각과 감정에 따른 몸의 언어와 색깔이 실시간으로 채색된다. 마치 AI를 뛰어넘는 인간애가 작동되는 놀라운 창작기법을 보는 듯하다. 세계적인 현대문학의 흐름에서 분명 새롭게 등장한 소설기법이다.
트렌드 AI ‘노벨상 2024’
영화 ‘노마드 랜드’(2021)는 시청자들에게 “모든것이 무너진 후에야 열리는 새로운 길”을 보여주었다. 이 영화는 미국에서 제작되었고 제93회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명작이지만, 전통적인 헐리우드 영화의 틀을 깬 실험적 영화에 속한다. 감독 클로이 자오(1982년생, 중국 베이징)는 40대 초반의 여성이다. 자오는 반항적인 10대를 보내며 만화 그리기, 영화감상, 팬픽 쓰기를 좋아한 MG세대이다. 그녀가 만든 영화 노마드 랜드는 주인공 여성 펀(프란시스 맥도맨드)이 경제의 붕괴로 도시 전체가 무너지고 파산을 맞이하면서 봉고차 한 대에 고단한 인생을 싣고 지구를 떠도는 사연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길에서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노매드들을 만나며, ‘길이 사람이 되고 사람이 길이 되는’ 특이한 여정을 지속한다. 광활한 길에서 맺어지는 인연은 자유와 방랑의 힘을 이어주는 에너지가 된다. 여성감독이 여성의 섬세한 눈길로 잡아내는 ‘길의 여정’은 영화 내내 음향과 음악, 배경의 색감이 실시간으로 등장인물의 감정 변화를 따라간다.
내용에 맞춰 명곡을 깔아대는 기존의 영화들과 너무나 차별되어, 나는 노마드 랜드를 보는 내내 주인공의 감정을 색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영화 노마드 랜드는 감정의 변화를 시적 영상으로 공유하게 만든 놀라운 경험을 선사했다.
헐리우드의 아카데미는 중국의 젊은 여성감독 클로이 자오에게 영화의 노벨문학상이나 다름이 없는 ‘아카데미 감독상’의 영광을 안겨 주었다.(한국에서 개봉했지만 흥행을 거두지는 못했다) 2021년에 나는 영화 ‘노마드 랜드’를 보며 인생의 길을 생각했고, 감동의 요리를 주제로 한 요리사 임지호(1956~2021)의 일대기를 그린 다큐멘터리 한국영화 ‘밥정’(2020)을 보며 펑펑 울었다. 인생의 참맛을 느끼게 해준 책들과 영화는 위대하다.
2024년 10월 12일, 노벨문학상 수상 다음 날에 일부 문인들은 한강의 수상을 폄훼하는 발언과 글을 공개적으로 게시했다. 작가 김규나는 공격적 발언 뒤에 노벨문학상은 한강이 아니라 중국의 옌롄커가 받아야 했었다는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그녀는 “한강의 작품은 역사를 왜곡하고 있으며 노벨 가치는 추락하고 있다”며 스웨덴 한림원의 타락을 걱정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시대의 흐름을 직시하지 못한 우문우답(愚問愚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2024년 노벨상 위원회는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를 여는 인간존엄의 ‘노벨상 트렌드’를 세워 수상자를 선정했다.
오늘까지 발표된 노벨상 수상자의 이력에는 두 가지 트랜드가 작용하고 있다. 인공지능 AI의 시대와 비폭력 평화주의다. 노벨화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한 데미스 허사비스(1976년생, 구글 딥마인드 CEO), 존 점퍼(1985년생, 구글 딥마인드 수석연구원), 데이비드 베이커(1962년생, 워싱턴대 교수)는 AI 혁명을 이끈 연구가들로 정평이 나 있다.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게리 루브쿤(1952년생, 하버드대 교수)과 빅터 앰브로스(1953년생, 메사추세츠대 교수) 역시 AI를 통해 연구했다. 심지어 AI 인공신경망을 활용한 연구자 존 홉필드(1933년생, 프린스턴대 교수)와 함께 공동으로 노벨물리학을 수상한 제프리 힌튼(1947년생, 토론토대 교수)은 AI의 아버지로 불리운다.
2024 이공계 노벨상은 AI가 트렌드이다. 인문계의 트렌드는 비폭력 평화주의와 새로운 실험적 페미니즘이다.
그런 의미에서 2024년 노벨평화상은 일본 원폭 피해의 생존자들을 주축으로 형성된 반핵운동단체 ‘니혼 히단쿄’, 즉 원폭피해자단체협의회에 돌아갔다. 노벨위원회는 “핵무기가 없는 세상, 다시는 핵무기를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증언하고 입증한 공로”로 이 단체를 선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물론 노벨문학상은 멈추지 않고 절대로 눈을 감지 않은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전개한 비폭력주의와 페미니즘의 평화로운 미래 인식을 실험적으로 다시 설정한 한강의 소설을 선택했다. 2024 노벨상 트렌드를 제대로 인식했다면 한강의 작품이 왜 선정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비폭력 이상주의를 가슴 밑바닥 깊은 울림으로 끌어 올리는 쾌거이며, 어쩔 수 없이 모두에게 공유되는 큰 기쁨이다. 놀랍다.
차수현 기자 chaphun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