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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1 임수미의 사람보기] 사람 볼 줄 아는 사람

기사승인 2019.09.23  18: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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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임수미의 사람보기>

사람 볼 줄 아는 사람

필자 임수미 선생님

“방금 그 사람 봤어?”라는 질문에 “응”이라고 대답한 적이 몇 번이나 있을까. 길을 걸으면서나 북적이는 상가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본 적은 있기나 할까. 아무래도 누군가를 보는 것은 부담스럽고, 용기가 필요하고, 시간과 마음을 써야 하는 수고로운 일이다.

한편으론 길 위에서 아는 얼굴을 만날 일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나고 자란 작은 도시를 떠나 큰 도시에서 가면을 쓰고 사회생활을 하며 지극히 좁은 관계망 속에서 산다. 그러니 누가 나를 알아보는 일도, 내가 누굴 알아보는 일도 쉬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굳이 수고로움과 용기를 들여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의 얼굴을 보는 습관 같은 것은 내게 없는 일이었다.

지난여름, 옆 동네에서 작은 축제가 열려 돌쟁이 아기를 데리고 나들이를 갔다. 유모차를 밀며 걸어가는데 맞은편에서 익숙한 얼굴이 달처럼 떠올랐다. 중학교 때 같은 반에서 꽤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가족과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어머, 어머.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쏟아내며 호들갑을 떨었다.

결혼 후 다니던 직장 생활도 잠시 중단한 채 더 큰 도시로 와 고립무원으로 살고 있던 때였다. 낯설고 외롭기만 한 도시에서 길을 걷다 아는 사람을 만나다니! 한껏 흥분해서 친구 손을 잡고 반가움을 쏟아낸 후 연락처를 주고 받았다. 집에 돌아온 내게 남편이 물었다. “그 친구랑 친했어?”. “응, 왜?”, “그 친구는 별로 안 반가워하는데 수미씨 혼자 반가워하는 것 같았거든.”,“그래? 그랬나?” 생각해보니 그는 웃는 얼굴이라기보다는 당황스러워하는 얼굴이었던 것 같다.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았다.

아, 그랬다. 나는 그의 결혼 소식에도, 돌잔치 소식에도 축하한다거나, 못 가서 미안하다거나 하는 당연한 응답조차 하지 않은 사람이었던 것을. 외로운 도시에서 아는 얼굴을 만났다는 사실에 마냥 흥분했다. 내가 그에게 어떤 마지막 모습으로 남아있었는지는 생각해보지도 않고 방방 날뛰었다. 그걸 알고 나니 너무 부끄러웠다. 아마도 그 친구, 속으로 참 어이없고 우스웠겠다 싶었다. 그런데 뜻밖에 친구로부터 먼저 연락이 왔다.

그 이후로 몇 차례나 둘이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심지어 우리 집에서 함께 낮잠을 자기도 했다. 사실 나는 그 친구가 가진 장점을 잘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어쩌면 그 친구의 마음이 어떤 빛깔인지 어떤 모양인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이제와 알고 보니 그는 도움을 주고 싶어도 도움을 줄 형편이 아니어서 슬펐던 사람이었다. 오래 전 친구 하나가 간절했던 시간을 홀로 견딘 사람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주변을 살펴 무엇 하나라도 베풀고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쏟아지는 운명 앞에서도 요란한 소리를 내지 않고, 그저 묵묵히 자신의 하루를 살아내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보고 살았던 걸까. 십 여 년 만에 다시 만난 친구의 따뜻한 마음을 앞에 놓고 바라보며 생각해 보았다.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에 대해 나는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었던 걸까. 그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어떤 정성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한 번이라도 제대로 바라본 적이 있었던 걸까. 신께서 세상 잘 바라보라고 두 개씩이나 주신 눈을 어디에 쓰고 살았던 걸까.

보고 싶은 것만 골라서, 그것도 나 보고 싶은 대로 조각조각 내어 엉터리로 세상을 바라본 것은 아니었을까. 교만이란 안경을 쓰고 내 기준에 따라 사람을 속단하고 평가하며 잘난 체를 해 왔었다.

한 사람의 생애가 어떤 수고와 헌신으로 이루어져 있는지에 관심 없는 게 멋인 줄 알았다. 삼십 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이 세상을 움직이는 수많은 눈빛들을 안 보고 산 것이 이제라도 후회되어 다행이었다.

사람을 제대로 바라봐야겠다는 다짐을 마음에 새긴다. 내 앞에 앉은 사람의 눈을, 에스컬레이터 앞에 선 사람의 처진 어깨를, 내 곁을 지나쳐 걷는 사람의 낡은 신발을 다시 바라봐야겠다. 그 눈이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그의 어깨에 어떤 마음이 담겨 있는지, 그의 발길이 향하는 곳이 어디일지를 잠시 멈추고 서서 생각해 봐야겠다.

눈길을 쓸 듯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하루를 살아내는 사람들의 바글바글한 힘으로 어쩌면 지구는 하루에 한 바퀴를 도는 건지도 모른다. 내 앞에 선 사람의 눈빛 속에, 발걸음 위에 그 숭고한 힘이 묵묵히 쌓이고 있다. 이제는 그 소중함을 함께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때에서야 사람 볼 줄 아는 사람으로 살 수 있을 것이다.

차수현 기자 chaphung@naver.com

<저작권자 © 세종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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