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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칼럼] 농부로 산다는 것

기사승인 2017.03.15  14: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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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칼럼] 농부로 산다는 것

[세종=한국인터넷기자클럽] 세종인뉴스 칼럼니스트 수연(水然)= 언젠가 직장을 일 년 쉬면서 늘 내가 가고 싶었던 여기저기를 걸신들린 듯 돌아다닌 적이 있다. 항공사며 여행사의 수속을 밟을 때마다 직업란을 채울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한참 망설이다가 부끄러운 마음으로 ‘농부’라고 적어놓곤 했는데 그러고 나면 왠지 기분이 참 좋았다.

   
▲ 농사를 짓기위해 과수원을 일구는 농촌풍경(사진=세종인뉴스)

진짜 농부가 옆에 있으면 실소를 터트리겠지만, 실제 나는 양평에서 19년째 농사를 짓고 있다. 물론 내가 짓는 농사는 엉터리 농사이다. 야채를 심으면 거의 다 산짐승이 먹어치우고, 또 일부는 벌레 몫이요, 그나마 풀을 매주지 않아 야채와 잡초가 구분이 안 간다.

어쩌다 열매를 맺어도 수확기를 넘기는 것이 다반사요, 수확해서도 절반은 썩혀서 버린다. 그래도 나는 농부라는 것이 좋고 이제 엉터리 농부라는 것이 부끄럽지도 않다. 그저 나만의 농사법으로 농사를 짓고 필요한 만큼 수확을 하고 거기서 나만의 기쁨을 누리면 그만인 것이다.

내가 믿기로 이 세상에 가장 좋은 직업 세 가지를 들라고 하면 첫째는 농부요, 둘째는 예술가요, 셋째는 가르치는 일이다. 나는 참 운 좋게도 엉터리이긴 하지만 이 셋 모두를 직업으로 하고 있다.

평생 아이들을 가르쳐왔고, 수 십 년째 어설픈 글을 써왔으면, 또 19년간 얼치기 농부 행세를 하고 있다.

이 중 단연 가장 행복한 일은 생명을 가꾸는 일이다. 씨를 뿌려놓고 바로 그 다음 날부터 싹이 나기를 바라며 밭가를 기웃거리고, 야채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 그러다가 내가 직접 심어 기른 작물의 결실을 먹어보는 것은 이 세상 무슨 즐거움과도 비교할 수 없다.

무엇보다 생명을 길러보면 그 생명과 내밀한 교감을 할 수 있다. 언젠가는 토마토를 심었는데 직장에 돌아와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무심코 토마토를 떠올리자 갑자기 토마토 잎의 향기가 코에 진동하였다. 사실 이런 크고 작은 신비한 체험들은 농사를 짓는 사람은 조금씩은 다 가지고 있으리라. 물론 어떤 연유이든 오감이 마비되어 버린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

이런 얘기를 듣고 참 낭만적이고 시대착오적이며 철모르는 사람이 다 있다고 수군대는 사람도 있으리라. 요즘 같은 세상에 농부로 사는 삶이 얼마나 슬프고 괴로운지 모르고 하는 쓸 데 없는 소리라고 비난 할 수도 있으리라.

어쩌다가 우리는 온통 모든 것이 돈으로 계량되는 세상을 만들고 말았을까? 아무리 세상의 가치가 전도되어도 금융인이나 장사꾼이 농부나 소방수 보다 더 우월한 직업이 될 수는 없다.

세상이 다 미쳐 날 뛰어도 나의 가치관을 오롯이 지키며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뭐 굳이 이런 머리 아픈 생각을 차라리 접어두고 사는 것이 더 좋은지도 모른다.

내 언젠가 기회가 오면 기어코 한 번 진짜 농부로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나리라. 사람과의 사귐 보다 어쩌면 식물, 나무, 동물, 지렁이, 나비, 꽃, 뱀, 피라미와 사귀는 것이 더 순수하고 깊은 즐거움이라는 것을 나는 벌써 알아버렸고, 애써 이를 숨기고 싶지도 않다.

인간 생명은 이미 너무나 오염되어 버렸지만, 수많은 다른 생명들은 아직 생명의 순수를 간직하고 있다. 이들과 교감하며 사는 것, 이는 환희요 신비요 축복이다.(수연)

수연(水然) 기자 root8959@hanmail.net

<저작권자 © 세종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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